대림 제 4주일 강론

 대림 초에 4개의 촛불이 모두 켜졌습니다. 4주일은 흰색 초입니다. 전례적으로 흰색은 기쁨과 환희를 의미합니다. 흰색의 초에 불이 켜졌다는 것은 성탄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탄의 준비를 이제 마치고 우리 마음에서부터 성탄의 기쁨을 새겼으면 합니다.

 

대림 4주일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루까 복음 139절의 임신한 처녀 마리아가 유다 산골에 사는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지리적으로 본다면, 엘리사벳이 사는 집은 예루살렘 근처 에인 카림(Ain Karim)이라는 동네입니다. 에인 카림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5마일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아가 사제 직무를 수행하기에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이 사는 동네는,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방문하기는 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나자렛과 엘리사벳이 사는 동네까지의 거리는 약 90마일 정도입니다. 아마고 하루에는 못 가고 며칠 걸렸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여행에 요셉이 동행하였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추측건대 아마도 요셉이 동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누가 임신한 여인을 그 먼 거리를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복음 서두에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서둘러갔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성서학자들은 하느님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마리아의 진지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오늘 두 여인의 만남과 동시에 요한과 예수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두 여인에게서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인간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여인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하느님 구원 계획에 동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여인의 만남에서 하느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두 여인의 희생이 있었기에 하느님 구원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요한이 오늘 처음 만납니다. 비록 어머니 뱃속에 두 분 다 계시지만, 분명히 무언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과 요한의 만남을 두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요한의 소리와 예수님의 말씀이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구원의 기쁨 소리를 외쳤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셨고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통해서 하느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전하였고, 그 요한을 예수님을 칭찬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희생하였다면, 예수님은 인류 전체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엘리사벳은 친척 동생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을 때, 오늘날 우리가 바치는 성모송을 노래하였습니다. 비록 동생이지만 마리아에게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에 아기도 복되십니다”. 동생이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바칩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인간적인 감정은 없고 오직 하느님의 성령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오직 겸손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철저하게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친 인물임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대림 4주일 복음은 만남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가져왔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났고, 예수님과 요한이 만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겠습니까? 인간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님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이 세상에서의 만남이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과 만남 속에 그리스도인들은 타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기도해 주세요. 상대방이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기도해 주시면 기도하는 은총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 마지막까지 좋은 만남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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