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1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느낌의 차갑고 강한 바람이 어깨를 움츠리게 합니다. 오늘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이고 주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마지막 연중 주일을 장차 세상의 심판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왕이란 호칭을 사용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에게 전해 주는 복음 말씀은 공교롭게도 빌라도 앞에서 재판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 줍니다. 왕으로 오시는 분이 보잘것없는 인간 앞에서 재판을 받고 계십니다. 재판받고 계시지만 아주 당당하게 서 계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서기 3047, 유대 달력으로 니산 14일 금요일 새벽에 예수님께서는 총독 관저로 압송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니산 14일 금요일 새벽에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압송했을 때 몸을 더럽히지 않고 과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서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요한 18,28).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불결하다고 보는 까닭에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찾아가지 않고 피하였습니다(사도 10,28). 빌라도 총독은 관저 밖에 운집한 유대인들과 관저 안에 계시는 예수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재판을 진행했다는 식으로 요한은 복음을 서술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총독에게 예수를 고발하며 조작한 죄목은 그가 로마 황제의 허락도 받지 않고 스스로 대권을 탈취코자 했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대역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당신이 유대인들의 임금이요?”하고 묻습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라고 하시면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답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자의식을 지니셨지만, 절대로 정치적 차원이 아닌 신앙의 차원에서만 메리시아라고 생각하셨기에 이처럼 모호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언뜻 보면 누가 누구를 재판하는지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문장입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정치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인간 이성의 작용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에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빌라도와 예수님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빌라도 앞에서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필자가 말하는 진리는 다름 아닌 교회가 2000년 넘게 외치고 있는,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구원이시고, 예수님은 사랑과 구원의 중개자라는 계시를 뜻합니다. 이러한 혼란 앞에서, 빌라도는 오늘 복음 다음에 나오는 구절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하고 유대인들에게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 안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살고 계시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 척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고 있지 않습니까. 진리 안에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고, 체험한 사랑을 이웃들에게 돌려주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진리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움을 돌려 화해를 먼저 청하는 것 역시 진리 안에 사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 역시 진리 안에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산다면, 우리는 왕으로 언젠가 오실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전례력의 새해인 대림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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