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1주일 강론

 11월의 첫 주일입니다. 우리는 11월 첫날을 하늘에 계시는 모든 성인을 공경하는 대축일을 지냈고 그다음 날은 죽은 모든 영혼을 위한 위령의 날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모든 성인이 우리 본당과 교우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기를 간청해 봅니다. 교우들께서도 11월 위령의 달 동안, 먼저 가신 부모, 형제, 친지들, 본당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시다가 가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부탁합니다.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11월에도 교우분들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기도합니다.

 

연중 31주일에 다가오는 예수님 말씀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근한 말씀입니다.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예수님과 어느 율법 학자의 대담내용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지켜야 할 계명은 10개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십계명은 유대인들이 받은 십계명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0개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십계명을 토대로 613개 조항의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248개 조항은 명령이고 365개 조항은 금지조항입니다.

 

신명기 65절에 나오는 들어라. 이스라엘아(셔마)’는 유대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외우던 기도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신명기 인용문은 유대인들의 셔마라는 기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아마도 마르코 복음사가가 조금 수정하였다고 합니다. 마르코가 오늘 복음 말씀에서 나오는 예수님과 율법 학자의 대담은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꾸며서 전한 것이라는 설이 강하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특별히 32절에 나오는 “‘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유대인들에게는 생소한 문장입니다. 유대인들은 당연히 유일하신 하느님을 믿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이스라엘을 벗어난 세계는 모두 다신교이기 때문에, 이 다신교와 대결하던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일신 강조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을 받아들이고 삶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십계명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613개의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십계명이 전부이고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 십계명을 압축하시어 더욱 간결하게 우리에게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두 가지 계명은 너무나 잘 아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의 이중 계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개인이 너무나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에서 첫째 계명은 완벽하리라 할 만큼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묵상해 보면 하느님 사랑은 우리의 주관적 사랑입니다. 각자가 자기의 방식대로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이 잘못되었는지도 잘하고 있는 사랑인지도 모르면서, 자기 주관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사람도 개인의 하느님 사랑에 관해서 평가와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하느님 사랑의 평가와 판단은 두 번째 계명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웃 사랑에서 개인의 하느님 사랑의 척도가 보이고 옳고 그름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이웃 사랑은 무엇입니까?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도 이웃 사랑은 있었습니다. 레위 19,18에 이웃 사랑에 관한 구절이 나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대목에서 유대인들에게서도 이웃 사랑은 큰 계명이고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이웃은 민족주의 관점에서 자기들의 동포만을 이웃으로 여겼습니다. 그 외에는 이웃이 없습니다. 해외에 사는 유대인들은 이웃의 폭을 넓혀 온 인류를 이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찾으라고 명하시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보여주셨듯이 그분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이웃이라 생각하셨고 필요한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삶에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은, 누가 나의 이웃인지 따질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이웃이 되어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사랑만 가지고는 하느님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 사랑만 지킨다면, 그것은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함께 가는 11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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