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3주일 강론

 7월부터 본당에 장례 미사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한 주 동안에 네 분이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본당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본당 생기고 처음이라고 하십니다. 세 분은 연세가 많아서 하느님 곁으로 가셨지만 한 분은 젊은 나이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교우분들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제발 평소에 건강 검진도 정기적으로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느님 곁으로 가신 교우분들을 위해 본당 공동체 전체가 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전도 여행 중에 청력을 잃은 한 사람의 귀를 열어주십니다. 전도 여행 중에 청력을 잃은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띠로 지방, 데카폴리스 지방은 유대인들 보다는 이방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성서학자들은 이 귀먹은 사람 역시 이방인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자신들의 구별을 확실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믿고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당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보더라고 이방인이라고 기적의 은총이나 구마의 은총을 거부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오늘의 복음에서는 귀먹은 사람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나서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하고 전하고 있습니다. 좀 특이한 방법으로 치유하시는 모습입니다.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손가락을 넣고 침을 바르며 하늘을 쳐다보고 숨을 내쉬는 것은 당대 유대계 및 이방계 기적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치유 행동이라고 합니다. 침은 불, , , 기름과 더불어 액체 약품에 속하였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얻으려는 것이고, 한숨을 쉬는 것은 그 기운으로 병마를 물리치려는 것이라고 성서학자들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사람의 상태는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청각 장애인은 이제 정상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이제 장애인으로서 동정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동정 이전에 그동안 받아 왔던 차별, 무시, 소외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변화에서 어떻게 자신이 다신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엄중한 권고에도 말입니다. 복음서는 또 우리에게 전합니다.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자신에게 일어난 긍정의 변화는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게 되어있습니다. 이 청각 장애인에게 일어난 자신감은 바로 자신을 고쳐주신 그분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인간 공동체로 들어왔음도 알리면서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청각 장애인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청각을 주시도록 청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세상살이 안에서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은 친구가 많고 모두가 좋아합니다. 우리 주위에 둘러보면,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는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지금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들의 신앙과 인품이 어떤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가족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친구가 있는지 돌아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어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나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면 나 자신이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침묵 속에 있는 나에게 오시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습니다.

청각 장애를 치유해 주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우리 귀를 치유해 주셔서 주님을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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