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 주일 강론

 온 세계가 여름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에서 여름 나기가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도 연일 폭우와 홍수로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안부 전화 물론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있음을 오늘 복음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식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주 파견된 제자들이 돌아와서는 전교 여행에 대한 보고를 받습니다. 제자들의 전교 여행 시간이 얼마나 주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할 이야기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로부터 보고를 들으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서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라고 전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외딴곳으로 떠났지만, 사람들은 예수님 일행을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 예수님을 따라나섰겠습니까?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고, 느꼈고,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그렇게 찾아오는 많은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라고 복음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유교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측은지심(惻隱之心)입니다.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표현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의 단서인 사단(四端)을 인()()()() 네 가지 마음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 ()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에서 우러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에서 우러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에서 우러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이시기에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측은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연히 무엇을 갈구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엾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겠습니다. 동시에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측은지심은 있습니다. 다만 좋지 못한 환경으로 인하여 본성이 많이 손상되었기에 악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좋은 마음들을 우리도 당연히 가져야 하고 우리의 삶속에서 실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가지셨던 측은지심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측은지심이 사랑에서 시작되기에 우리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다른 방법으로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십시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십시오. 신앙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형제, 자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십시오. 위로와 위안은 사랑의 극적인 표현입니다. 위로하거나 위안을 주는 방법은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헤아리는 것입니다. 내 감정을 먼저 표현하지 마시고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면, 측은지심이 마음으로부터 작동하기에 위로와 위안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덤으로 기적까지 베풀어주셨습니다. 또한 동시에 가장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신 것은, 다름 아닌 위로와 위안이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계십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위로와 위안을 주십시오. 그 말씀 안에 예수 그리스도 함께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 독서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고 설파 하셨습니다. 나 자신의 작은 위로와 위안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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