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 성혈 대축일
6월의 첫 주일입니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는 지난 5월 5일이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이상기후 현상이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기도 합니다. 6월에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교우분들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오늘 지내는 대축일은 우리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대축일입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아주 각별한 유산이고 행위입니다. 오늘 지내는 이 대축일은 성체 성사에 대한 기억(anamnesis)이고 기념이기도 합니다. 성체 성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소중한 유산입니다. 성체 성사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요한 복음을 제외한 공관 복음과 바오로 서간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 26,26-30; 루까 22,14-20; 1코린 11,23-25은 성체 성사에 대한 기록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체 성사 역시 지난주 우리가 봉헌한 삼위일체 대축일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 신앙의 큰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과월절(무교절) 음식을 드시면서 성체 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과월절 축제 음식을 먹으시면서 유대교에서 지내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방식의 과월절 축제를 만드셨습니다. 그 축제가 바로 성체 성사입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22절).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23절)” 이 말씀과 행위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위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게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전례에서 성체, 성혈에 대한 행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아주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때에, 루터는 이 행위를 생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이어진 개신교의 형성에서는 이 성찬의 전례가 생략되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개신교에서는 말씀의 전례 행위로 예배를 보지만 1년에 몇 차례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우리와 같이 성당을 사용하는 Great Baltimore Church에서는 주일 예배 때마다, 우리와는 다른 형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박해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찬 거행을 목격하고는, 이들은 인간들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시는 아주 야만적인 행위로 황제에게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성체 성사 신비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기억(anamnesis)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념과 기억은 과거의 있었던 사건을 단순하게 기억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의 재현(enact)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과월절을 지내면서 과거 조상들이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음을 기억하고 기념하여, 그들의 현실 생활에 재현한 것처럼, 이 성체 성사의 기억과 기념 역시 미사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성찬례 거행 중에 사제는 “너희는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제 개인의 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찬례에 함께 현존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찬례 거행은 사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거행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성체 성사 역시 삼위일체 하느님은 완벽한 사랑을 바탕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는 것처럼,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을 믿고 의탁하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신 지고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47항)라고 성체 성사를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야 합니다.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서로에 대한 상처를 과감하게 용서하고 털어버리고, 먼저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미는 사랑의 표현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와 화해의 사랑을 보여주는 6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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