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2주일 강론
이제 나뭇잎도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안 떨어지려고 버티는 낙엽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저런 나뭇잎도 자기 역할이 있음을 언뜻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봄부터 작은 잎새로 나무에서 나와서 무더운 한여름 동안에 인간에게 시원한 그들이 되어준 것에 고마워하는 작은 마음도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일생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 온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의 이름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사람입니다. 성서학적 차원에서 보면, 요한은 서기 27년경 사해(Dead Sea)북쪽 요르단강 주변에서, 이스라엘 각지에서 모여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다가오는 종말을 맞아 회개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행위였습니다. 요한의 활약 가운데서 세례 운동이 가장 돋보여 사람들은 그를 세례자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적 활동 초기에는 잠시 세례를 베푸셨으나 (요한 3,22; 4,1)오래지 않아 그만두셨습니다.
요한의 외침과 예수님 외침의 공통점은 “하늘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하라고 외쳤습니다. 말씀은 하느님께서 친히 온 누리를 다스릴 종말이 임박했으니 생활 태도를 바꾸라는 외침입니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둘렀다고 하는데 이는 유목민의 복장입니다. 또한 요한이 먹는 음식도 문화인들의 음식이 아니고 유목민들이 사막에서 우연히 구해 먹는 메뚜기와 산에서 나는 꿀이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같이, 요한은 엘리사벳의 아들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가시신 후,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 답답해하던 차에, 유다 산골에 사는 친척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갔던 일을 우리는 복음에서 자주 읽었을 것입니다(루까 1,39-45). 즈카리아의 집에 도착해서 마당에서 엘리사벳을 만나을 때 두 여인의 뱃속에서는 아기 둘이 뛰어놀았다고 복음은 전합니다(41절). 아마도 태중에 있는 요한과 예수님이 처음 만났습니다. 이때부터 요한과 예수님은 하느님 구원역사 안에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의 역할은 절대로 주연배우가 아니고 예수님을 위한 철저한 조연배우였습니다.
요한의 세례 운동하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세례를 받고 생활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너무나 힘이 있고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앞에서 누구도 그에게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낌새를 알아챈 세례자 요한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철저하게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유혹이 그에게 왔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겸손한 세례자 요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역할에 만족하셨고 요한을 높여주셨습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루까 7, 29)라고 칭송하셨습니다.
각자의 삶 안에서 역할을 한번 묵상해 봅시다. 아버지로서의 역할, 어머니로서의 역할, 형제. 자매 관계에서의 역할, 친구관계 안에서의 역할, 직장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 비즈니스 안에서의 역할,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이 있습니다.
현재의 나 자신이 있기에는 과거의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나 자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 자신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현재의 나 자신의 위치를 후회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과거 시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나 자신을 보면서 과거의 일을 회상하고, 그 순간에 아니면 그 시간에 자신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지 못한 자신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의 역할에 충실해야 더 나은 미래를 살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비즈니스에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대림 2주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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