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6주일 강론
10월의 첫 주일입니다. 가을의 시간으로 들어왔습니다. 선선한 가을 바람 많이 맞으시고 가을 햇살도 많이 받으시기를 바라면서, 10월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교우분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 중에서 ‘자기 과시(self-display)’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겸손의 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자기 과시 본능을 완전히 극복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자기 과시가 심한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방면에서 이야기합니다. 첫째로, 자기 자랑을 일삼는 사람들은 대개 유년 시절 인정받거나 칭찬받지 못한 아픔을 가지 사람입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 대한 결핍과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고자 끊임없이 자신의 매력을 보이는 말들로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자기 과시가 심한 사람들은 남들의 평가에 따라 좌우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잘난척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남들의 평가에 따라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비유 말씀을 통해 사회적 통념을 송두리째 엎어버리는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을 듣습니다. 모두가 공적인 죄인이라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마른하늘에 벼락같은 말씀을 듣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예수님 시대의 사람 중에서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항상 무엇인가를 갈구하면서, 신앙과 인간관계 안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잘났고, 경건하고, 성숙한 신앙을 가졌고,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靑天霹靂, a bolt from the blue)’은 소리였습니다. 그 분류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가 잘 아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입니다.
성서학적으로 ‘바리사이’라는 이름은 ‘페루스힘(분리된 자)’에서 온 말로써, 한 다른 집단에서 외적으로 갈라선 것과 관계가 있거나, 또는 더 개연성이 크게는 여느 백성에게서 내적으로 갈라졌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바리사이들의 관심사는 백성의 성화와 정결에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성화되었고 정결한 사람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삶의 목표는 제관의 정결 규정을 일상에서도 준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하느님 공경이 수많은 제약과 의무수행에 연결되어 엄숙한 위신을 증언합니다. 율법이 이들 삶의 중심이고 행위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간데없고 오직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 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강조하신 사랑이나 자선은 없습니다. 진정 어린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잘못만을 찾으며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 마저도 율법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모두 없어진다는 생각을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집단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율법 준수에 모든 가치 기준이 있습니다. 이 두 집단은 율법을 이용해서 자기 과시가 너무 당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미사 오는 중에 교통사고가 난 현장에서 사람을 구출하려는 생각은 없고 미사 시간에 맞추어 가려는 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그들은 이미 공적인 죄인으로 낙인찍혀 있기에 그저 고개 숙이고 인간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요한의 외침에 회개의 삶을 살았고 우연히 마주친 예수님께 최선을 다해서 그분에게 다가가고 그분을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알고 있었기에 무조건 예수님께 다가갔고 그분으로부터 위로와 죄 사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누구입니까? 자기 과시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영적교만’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나 정도의 인품과 신앙 생활은 예수님도 인정해 주실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과시를 드러냅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을 먼저 감싸줄 때 회개의 시작이고 하느님 나라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자격이 시작됩니다. 때로는 공동체의 허물 역시 감싸주고 가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0월의 시작을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감싸주면서 시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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