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0주일 강론

 가을을 준비하고 더위가 물러선다는 처서(處暑)가 수요일(23)입니다.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좀 선선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연중 20주일 복음은 정말로 아름다운 복음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과 이방인들과의 대화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 여행은 주로 이스라엘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치유의 대상들이 주로 유대인이었지만, 가끔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자비와 치유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나오는 복음이 바로 그중의 하나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치유해 주는 대목도 있습니다(마태 8, 5. 루까 7,1-10. 요한 4,43-54). 오늘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유해 주시는 복음 내용과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해 주시는 내용을 보면 읽는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내용이 나옵니다.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해 주시는 내용과 오늘 가나안 여인의 딸 치유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스스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보다 더욱 깊은 신앙이 있는 것에 감탄하십니다. 백인대장 종의 치유 대목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는 감탄의 말씀을 하시면서 치유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는 말씀으로 감탄을 하십니다.

 

아마도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아주 흔쾌히 악령을 쫓아내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자신의 부탁도 쉽게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했을 뿐 성가신 일이 따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소문에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서 무언가를 청하기만 하면 모두 들어주셨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라고 소리치지만,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침묵에 가나안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기에, 제자들마저도 귀찮게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침묵 안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침묵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즉흥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계시는 하느님을 이 여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 속에도 침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이 가나안 여인을 통해서 깨달았으면 합니다.

여인에게 침묵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보여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이 말을 쉽게 생각 없이 들으면 너무 서운한 말씀입니다. 우리 각자가 이 여인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순간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겠습니까? 악한 감정을 가지고 뒤로 돌아서 집으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이 여인처럼 그 자리에 서 있겠습니까? 가나안 여인은 침묵하시는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을 만났기에, 이 서러운 말씀에도 겸손하게 자신을 강아지로 비유하면서 딸을 치유를 애원합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여인은 딸을 위해서 자신을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침묵과 모욕적인 말씀에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더욱 빛나고 예수님마저 감탄하게 만듭니다. 가나안 여인의 신앙 성숙은 한층 더 깊어졌으며, 앞으로의 인생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가나안 여인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과 고통을 통해 침묵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밖으로는 표현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는 경우도 있고 빠져나가려고 해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어두움과 침묵 속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보십시오. 더욱더 자신을 낮추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어쩌면 우리가 가나안 여인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을 낮추고 침묵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당당히 만나는 한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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