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오월 셋째 주일입니다. 계절의 여왕답게 날씨가 너무 화창합니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쌀쌀함도 있습니다.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 어머니날에 꽃을 선물해 드렸습니다. 영성체 기도 후 한 분씩 나오셔서 드렸습니다. 미사 후 어느 어머님께서 한분 한분 모두 주셔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그 미소와 웃는 얼굴이 한 주 동안 저의 가슴에 머물러 있어 저도 행복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 1 독서인 사도행전에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에서는 승천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나오지 않습니다. 마르코 복음(16,19)에는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루까 복음(24,51)에서도 간략하게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요한 복음에는 아예 예수님 승천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승천 사건은 부활과 승천은 실제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죽음을 넘어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곧 승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다른 복음서들이 보도하지 않는 것은 부활과 승천이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부활과 승천을 굳이 분리하여, 두 개의 사건으로 말하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부활을 더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우주가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 죽음의 나라, 이렇게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은 죽음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돌아온 것이고, 승천은 땅에서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로 다시 올라간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부활과 승천 사이에 40일의 기간을 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복음 선포에 나서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승천 사건은 부활 사건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승천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오늘 본기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본기도에서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기쁨에 가득 차 감사의 제사를 바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본질은 하늘나라에 대한 우리의 희망입니다. 부활 사건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본보기를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우리 역시 마지막 날에 예수님과 같이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승천 사건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에 그리스도를 따라 승천하여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지복직관(至福直觀)한다는 의미입니다. 부활과 승천을 통해 우리가 희망을 두게 되었기에 이 현세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좋고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희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면, 우리 이민자들만큼 애틋하고 절박한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통적인 이유는 희망일 것입니다. 태어났던 고국을 떠나 이 먼 곳까지 와서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신앙을 가짐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역시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원한 희망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삶과 상관없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은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각자가 가신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노력해 왔습니까?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 동안 일하신 분들도 많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희망이 있기에 현실의 시련과 고통도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으며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승천 대축일 지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얼마나 성취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동시에 앞으로 성취해야 할 희망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생각해봅시다. “갈래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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