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일

 금요일 새벽부터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서 아침에 일어나니 사제관에 전기가 나갔습니다. 다행히 성당에는 전기가 나가지 않아서 아침 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제관에는 오후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토요일 아침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오늘 연중 7주일의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지난주 복음이 루까 복음 617절에 시작하는 평지설교의 말씀이었습니다. 역설적인 행복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 5장과 7장이 말씀과 비슷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고 우리가 실천하기가 좀 껄끄러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일명 명령적인 말씀입니다(with a series of imperative).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오늘 이 복음 말씀을 누가 듣고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듣고 있는 바로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성서말씀을 우리는 흔히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왜 살아있는 말씀(living words)이라는 뜻은 단순히 과거에 기록된 글이 아니라, 오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직결되는 말씀이기에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믿음을 갖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매 순간 결단의 삶을 살겠다고 하느님께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 약하든 강하든 밋밋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 말씀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과거 옛날에 기록된 글을 읽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막연한 문학책의 글을 읽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을 듣고 읽고 하면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동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느님께 항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도저히 실천하지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저의 원수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줍니까? 저는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아니면 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실천하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에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든지....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연중 5주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밤새 헛되이 그물질했지만, ‘주님께서 하시라고 하니 하겠습니다.’하고 따랐듯이 우리 각자가 주님 말씀에 따라 시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감정(feeling)입니다. 우리가 선한 것을 결단하는 데 있어서, 그것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나의 역감정(counterfeeling)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로 나의 감정을 앞세워서는 안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실천함에 있어서 과연 나의 감정을 배제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이나 성모님 앞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그리고 자주 보는 상대방 앞에서는 오늘 말씀 그저 먼 나라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로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으로, 믿음을 키우시면 됩니다. 직접적인 실천 이전에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시면 됩니다. 가게 방문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님은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습관적으로 묵주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기도의 습관은 오늘 예수님 말씀 실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은 우리 이성의 사고와 행동을 뛰어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상식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 기도로써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는 습관을 만드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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