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 강론

 길거리의 낙엽도 이제는 대부분 모두 떨어졌습니다. 나무에 나뭇잎이 없기에 더욱 쓸쓸함과 황량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죽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나무지만,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내년을 기약하면서, 나무는 인내하고 인간들이 모르게 많은 영양분을 대지의 깊은 곳에서부터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대림 3주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대림 1주일 강론에서 대림 시기는 두 부분으로 나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216일까지가 첫 부분이라면, 17일부터는 두 번째 부분입니다. 첫 번째 부분이 구세주 오심에 대한 기다림의 시간이라면, 두 번째 부분은 구세주의 탄생이 임박함을 알리는 시기입니다. 이제 대림초에 3개의 촛불이 켜졌으므로, 구세주 탄생에 초점을 두고 그분의 오심을 더욱 열과 성을 다하여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대림 시기 둘째 부분에 와서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지난주에 이어서 루카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복음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리아의 아들 요한에게 내려서, 요한은 요르단강 부근으로 와서 세례를 베풀면서 구세주 오심을 외쳤습니다. 그 외침이 너무나 힘이 잊고 살아있었기에, 또 그 외침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기에, 오늘은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요한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은 도저히 요한에게 다가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기에 요한에게 찾아옵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복음의 앞 절 37절에서 9절까지, 요한은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독설을 퍼붓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하고 외칩니다. 마태오 복음 37절에서는 같은 내용이지만, 요한의 외침을 듣고 찾아오는 그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활 동안, 예수님을 집요하게 방해하였던, 바로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역시 요한의 외침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요한은 구체적으로 그 답을 제시합니다. 세리들에게, 군인들에게 그리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도 제시합니다. 우리는 세금을 갈취한 일도 없고, 세금을 탈세한 일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하거나 갈취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해답을 오늘 제2 독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지난주에 이어 필리피서 4장에서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그러면서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라고 오늘 우리에게 그 답을 알려줍니다. 바로 우리에게 너그러운 마음가지기를 강조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너거러움은 희랍어로 επιεικεια라 하고 합니다. 너그러운단어를 영어 성서에서는 Kindness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영어의 what is right or fitting, kindness, serviceable, equable, moderate, reasonable, gentle, meekness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옳은 것, 적당한 것, 합당한 것, 온화한 것, 유순한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지난주 강론에서 말씀드렸던 분별력과도 연결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다면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 너그러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셨기에, 십자가상의 죽음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 역시, 예수님과 같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 오심에 대한 충실한 역할 역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게 너그러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너그러움은 자신에 대한 희생을 각오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너그러움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자신 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주고 배려할 능력이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너그러움을 항상 말하고 살지만, 자신의 희생과 사랑, 배려가 없다면 그 너그러움은 거짓말이며 가식입니다. 자신 마음 안에 너그러움이 있는지 없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라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대림 3주간을 지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움과 공동체에 대한 너그러움 또한 요구되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나의 너그러움을 보여주시고, 공동체 전체에 대해서도 나의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마음을 가지고 한 주간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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