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10월의 첫 주일입니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이고 성모님의 달이라면, 10월은 계절의 왕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10월을 로사리오 성월이기도 합니다. 10월에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볼티모 순교자 성당 교우들에게 축복해 주시어 몸과 영혼에 건강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묵주기도의 은총이 풍부히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 역시 계속 언급하였듯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중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예수님은 오늘날 인기 많은 연예인처럼 군중들을 몰고 다니십니다. 정확한 장소는 어딘지 모르지만, 유다와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물론 오늘 복음은 10장 2절부터 선포되기에 나오지 않습니다만, 앞 절 1절에는 나옵니다. 그 지역에서도 군중은 몰려들었고, 예수님은 늘 하시는 대로(as was his custom)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역시 예수님을 뼛속부터 싫어하는 바리사이들이 와서 또 트집을 잡고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혼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예수님 속을 떠봅니다.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율법, 즉, 신명기 24;1-4를 인용하면서 이혼장을 써주면 이혼할 수 있다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모세의 율법에서 이혼할 수 있다고 했으니, 굳이 예수님께 물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이 질문에서 이혼 허가를 하시면 명백하게 갈등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전략은 그분의 정통적이지 않은 관점(unorthodox views)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랍비들이 가르치는 스타일로 그들에게 도로 묻습니다. 사실, 모세는 이혼에 관한 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인용하는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지만, 신명24;1-4는 남편이 이혼장을 부인에게 써줌으로 부인을 친정집으로 보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지 명확한 선언은 아니었습니다. 이혼장은 남편에게 부여된 어떠한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게 해주는 부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인에게 남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남편의 법적인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편으로서의 책임입니다. 못난 남편, 능력 없는 남편, 지질한 남편, 여성을 배려할 줄 모르는 남편을 뜻합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어디까지나 남편이 부인을 포기하였을 때, 여성을 사회와 가정에서 보호하려는 것이지 남편의 편의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규정은 절대 아닙니다. 이혼장의 목적은 이혼을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성에 대한 이혼의 결과를 제한하려는 것입니다. 여성이 그녀의 남편과 이혼하기 위한 일치하는 법률적인 권리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악의가 담긴 질문에 그들의 마음 상태를 나무라 십니다. 예수님은 모세를 인용하면서 유대인 전체를 싸잡아 마음이 완고한 민족(hard-hearted), 목이 뻣뻣한 민족(stiff-necked)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창세기 2장 2절을 인용하시면서, 남녀의 일치를 강조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남녀의 결합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하느님과 연결해 주십니다. 남녀의 결합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창조 사업의 지속적인 계승임을 함축하는 말씀이십니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가톨릭교회에서는 이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결합한 혼인을 분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가톨릭교회에서는 혼인 서약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 자체가 무효임을 판결함으로써 남녀 각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 무효 결정은 교회법원에서 하는 것이지만 그 원인을 남녀 각자에서 찾고 있습니다. 혼인 서약 때 서로에게 충실하고 성실하게 사랑하고 살겠다고 교회공동체와 하느님 앞에서 서약했지만 살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서약을 깨는 것이기에 처음부터 혼인이 잘못되었고, 남녀 둘 중 한 사람이 거짓으로 서약했다는 것을 밝혀 혼인 자체가 무효임을 선언합니다. 그것이 혼인무효 선고입니다. 그러기에 이혼은 아닌 것입니다.
혼인의 목적은 부부의 선익과 자녀 출산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혼인의 근본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주십니다. 이 순간, 그 옛날 혼인으로 맺어지는 시간으로 한번 돌아가 보시기 부탁드립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또는 아픔도 겪었던 분도 계시지만 지금 이 자리까지 오도록 해주심에 감사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복음의 마지막에 예수니께서 어린아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듯이 하느님 성전에 있는 이 순간만큼 순수함으로 하느님 앞에 있으며,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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