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가을에 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라는 말입니다. 9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다음 주에는 10월에 만납니다. 가을 하늘은 정말로 예쁩니다. 맑고 깨끗함으로 대표되는 하늘을 자주 보시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관계적 동물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politics)’에서 인간을 정치적 동물(Political animal)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세네카라는 로마 철학자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옮기면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결국 인간은 관계적 존재라는 말로 통일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의미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고 관계 안에서 인생이 시작되고 관계 안에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말도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도 인간관계안에서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그가 제자 일행이 아니라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보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괜찮다고 하십니다. 요한이 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구체적으로 복음서는 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요한의 인간성을 잠깐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의 인품이 좀 편협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자기들과 함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자기 편이 아니라 판단하고 그 일을 못 하게 하였다고 보고 합니다.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마귀를 쫓아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런 은총을 받았다고 믿었기에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가만히 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로 예수님을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옳으신 말씀이면서 당연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 도움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다르게 변할지는 모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스러운 인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그러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왕으로까지 모시려고 했던 그 사람들이 한순간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사람들임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든지 편협한 마음을 갖지 말고 개방된 자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라고 하십니다. 자기와 뜻이 다르다고 자기 편이 아니기에 적으로 간주하는 그런 옹졸하고 편협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엄청난 경고를 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상과 벌이 동시에 내려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상이 기다리고 동시에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악을 베푸는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벌이 있음을 말씀하시고 계시네요. 더 크게 나아가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죄를 짓게 하고 옹졸한 마음에서 함께 공범자가 되게 하는 아주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공동체의 교우분들은 매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고 미사에 참여하고 일상을 열심히 살고 계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을 절대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이름을 부르고 있는 다른 형제, 자매들을 때로는 미워하고 비난하고 비판할 따름입니다. 그 기준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에서 나온 판단일 뿐입니다. 그러나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조건은 자기중심적 판단만 빠져나온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약하고 불완전하고 욕심도 많고 탐욕적이고 교만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서로에게 물 한잔 기분 좋게 건네주시고 서로를 위해 몰래 기도해주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분 좋은 말을 먼저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또 내가 먼저 다가가서 화해할 줄 아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누구보다는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볼티모 한국순교자성당의 교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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