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강론

아침, 저녁의 선선한 바람이 가을이 바로 앞에 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선선한 바람을 많이 맞으면서 마음도 시원해지고 넉넉하고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연중 24주일의 복음의 주제는 제자 되는 길입니다(on the way of discipleship). 마르코 복음의 827절부터 1052절까지를 성서학자들은 여행이야기(travel narrative)라고 부릅니다. 또 다르게는 여정(journey)’ 혹은 도상, 도로(roadway)(8:27, 9:33-34, 10:17,32,46,52)’라고 하기도 합니다. 1052절까지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공관복음 전체에 모두 나오는 것이며,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이제 예수님의 주 활동무대인 가파르나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이루어졌다 하여 이렇게 부릅니다. 특히,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되는 길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시작 11절부터 예수님의 정체성(Identity)을 바로 밝혀줍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라고 정확하고 명확하게 밝혀줍니다. 그리고 오늘 베드로 사도의 고백으로 한 번 더 확인시켜 주면서 동시에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메시아에 대한 소문을 제자들에게 물으시면서 소문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바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이 물음은 마태오와 루까 복음에도 나오는 대목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대답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물음과 대답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다른 열한 제자들의 고백이었고 2000년이 지나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대목에서 제자들에게는 전환점이 되는 시점이고 예수님에게는 메시아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제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과연 무엇입니까? 그 해답은 바로 이어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마르코 복음은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아드님은 어떤 아드님입니까? 베드로 사도는 자기 스승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 메시아이고(히브리어) 구세주(한국어)라고 고백합니다만 스승과 제자가 생각하는 그 구세주에서 차이가 엄청나게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리스도는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서의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메시아요 구세주이며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스승이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고통과 죽음을 예고하시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펄쩍 뛰며 온 몸을 던지며 말립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제자들의 반응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면 너무나 큰 저주를 내리십니다. 과연 사람의 일이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안락함과 편안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되기를 원하지만 그분과 함께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에는 들어가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편안하게 안락하게 원하는 것 다 이루며 살고 싶다는 인간 본능의 제일 아래에 머물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가 되는 길의 첫 과제는 자신의 십자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말씀은 제자 되는(Discipleship) 순서의 제일 첫 번째 차지하는 가르침이자 명령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로 고통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가톨릭 신앙 즉,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그 이유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착하게 살기 위해서, 현실의 삶에서 축복받기 위해서, 가족들이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서, 재물을 많이 모아서 자선을 하기 위해서......, 이러한 것이었다면 정말로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스승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이상도 없고 그 이하도 없습니다. 이러한 단순한 생각으로 살아가십시오.

 

우리 각자는 자기의 고유한 십자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비단 자기 것이 아닌데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혈육의 십자가도 지고 살아갑니다. 부부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고 자식의 십자가도 부모로서 짊어지고 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손자, 손녀의 십자가까지도 짊어지고 가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너무나 무거워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대로 버릴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하는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버리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입니다.

각자에 주어진 십자가를 고통스럽지만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그리고 서로의 십자가를 가볍게 해 주시도록 기도해 줍시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본당의 교우들이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한가위 미사

연중 제7주일

연중 제31주일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