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 강론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름의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캐나다 벤쿠버에는 45.6까지 기온이 올랐습니다. 1800년 기상 관측 후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이상 기온으로 연세 드신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더운 여름 특별히 건강 조심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김용효 신부님의 은퇴 미사가 있는 날입니다. 신부님께 어디 계시든지 영육 간에 건강하시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몇 년 전 저의 고향 성당인 왜관 성당의 주임 신부님께서 전화를 저에게 하시어, 이번 대림절에 본당에 와서 특강을 한번 해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거절하면서 본당의 주임 신부님께 오늘 성서 구절을 인용해 주었습니다. 신부님, 예수님 말씀에 “예언자는 어디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린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들이 버젓이 있으며 친구들이 저를 보고 있고 선배 후배들이 저를 얼마나 잘하나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저 자신에게 용납이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선교 여행에서 하나의 충격을 주는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르셔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데 그 말씀에 마을 사람들은 놀라고 있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권위가 있었고 그 가르침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듯합니다. 그들의 반응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그들의 반응에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사람으로서 믿음이 배제된 채 일어난 반응입니다.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신앙을 그들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어릴 적 보았던 인간 예수만을 생각합니다. 그 결과 당연히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예수님은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몇 명의 병자들만 고쳐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회당에 있던 사람들의 불신앙(Unbelief)이며 그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그분께 믿음이 아니라 인간 예수님만을 생각하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태도를 보입니다. 비록 그들이 병자를 고치시는 그 광경을 보았지만, 끝까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태도를 보이지 못합니다. 이런 모습에 예수님은 그저 놀랄 뿐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추측건대 회당의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는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복음은 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태도(attitude)는 “어떤 사람이나 대상 혹은 어떤 문제에 대해 평가하는 반응의 지속적인 성향”을 말합니다. 자주 인용되는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태도는 심리적 대상에 대해서, 정서적, 인지적, 능동적 혹은 행동적인 반응을 말합니다. 심리학적 이론에 따라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테두리 안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어떤 태도로 일관해 왔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꾸준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을 드려왔습니까? 저 역시 사제로 살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 저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성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속적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분께 믿음과 사랑을 모두 드리지 못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감정에 따라서, 우리 기분에 따라서 믿음을 드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난 사소한 태도, 즉 생각이나 말투 그리고 행동들에서 우리는 우리 태도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태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과도 직결됩니다. 또한 대인관계 안에서도 태도를 통해서 그 관계의 깊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당신의 감정만을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한결같은 태도로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완고한 마음,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신앙생활이나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오는 교만과 거짓, 오만함, 탐욕, 분노 등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한결같은 태도로 다가가며 동시에 가족과 이웃에 대해 한결같은 좋은 태도로 관계를 맺도록 노력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믿음과 태도를 보시고 놀라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가족과 이웃에 좋은 태도를 가지고 관계를 좋게 맺는 한 주간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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