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 성목요일

 성삼일(Tredium Pascale)의 첫날 주님 만찬 미사입니다.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여러 사건들을 거행합니다. 파스카 신비의 사건들은, 성체 성사 곧 성찬례의 제정, 성찬 제사를 거행할 사제직의 제정, 이웃 사랑의 새 계명의 제정,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저승에 내려가심, 그리고 마침내 부활 사건입니다.

오늘날 파스카 성삼일에 관련한 전례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시작하여 파스카 성야에 절정을 이루며 부활 주일의 저녁 기도로 끝난다.” 

파스카 성삼일은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 사이에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전례 시기가 구별됩니다. 사실 파스카 성삼일은 사순 시기에도 부활 시기에도 속하지 못하고, 파스카 성야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 제2저녁기도까지는 파스카 성삼일과 부활 시기에 겹쳐서 속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와 구별되는 별도의 이름을 부여 받아왔습니다.

 전례 규정에 따르면 파스카 성삼일은 삼일에 해당하는 시간 길이를 가지지만, 이 삼일이 일상 생활의 삼일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파스카 성삼일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를 거행했던 성주간 목요일(저녁 기도 시간 전까지)은 파스카 성삼일에서 제외된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와 부활 주일.

 일상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주일 이렇게 4일처럼 여겨지지만, 일몰에서 일몰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던 유다인들의 시간 개념에 따라 다시 계산하면, 성목요일 저녁 주님 만찬 미사부터 대략 3일에 해당합니다.

덧붙여 파스카 성야에서 부활 주일 제2저녁기도까지의 시간은 파스카 성삼일에도 속하고 부활 시기에도 속한다는 것은 파스카 성삼일이 수난의 파스카에서 부활의 파스카로 넘어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을 읽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흔히 말하는 세족례는 다른 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하필이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을까요? 발은 우리 신체중에서 제일 아래부분에 있습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아실 것입니다. 수드라는 계급은 제일 밑바닥에 있는 계급입니다. 이 수드라는 노예계급의 이름입니다. 이 수드라라는 계급의 사람들은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더운 나라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샌달(sandal)을 신고 다녔습니다. 사막성 기후에 덥고 바짝 마른 날씨에 샌달을 신고 다니기에 발은 온갖 먼지를 모두 머금고 있는 상태입니다. 당연히 발은 더러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더러운 곳을 닦아 준다는 것은 크나큰 희생이고 봉사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에는 성체성사의 설정으로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지만, 요한 복음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예수님은 표현하십니다. 오늘 이 만찬 미사는 사랑이 전제되는 미사입니다. 반드시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만찬을 마지막으로 그들과 작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시작은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복음 말씀 마지막에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강조하십니다.

미사 마치고 집에 가셔서 가족 서로의 발을 한번 씻겨 주십시오. 부끄러워 하지 마시고 한번 해 보세요. 그러면 오늘 복음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고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성체성사의 설정과 발씻음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다름이 아닌 사랑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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