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 강론


 

4월의 중순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시인 T.S.Eliot는 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습니다. 잠깐 소개하면,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이 시인은 4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임에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기까지는 아픔과 고통이 수반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찾아오는 봄기운을 마음껏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본당의 잔디 냄새가 싱그러움을 더해 줍니다.

 

오늘 부활 3주일 복음은 지난주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 부활 발현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제자들 가운데 발현하시어 그들의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참으로 부활하심을 확인시켜 주는 작업을 하십니다. 유령(ghost)으로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만져보라 하십니다. 나아가서 더욱 확실한 확신을 주시기 위해 먹을 것을 달라고 하시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드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불안한 믿음에 대해서 꾸짖어 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의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의혹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διαλογισμοσ(dialogimos)’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도 있습니다만, 오늘 쓰인 단어의 의미는 근심스러운 성찰(anxious reflection)이나 의심(doubt), 더 정확하게는 고통스러운 의심(torturing doubt)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동물입니다. 이 의심은 옛날 말로 명오(明悟, 사물에 대하여 명확히 깨달음)가 열리면서, 즉 이성의 사용이 제대로 작동되면서부터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의심이나 의혹을 가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정상적으로 이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의심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그 의심의 대상은 세월의 흐름 안에서, 연령대에 따라, 현실에서 다가오는 순간마다 모두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하느님 나라를 설파하시면 여행하실 때 몇 번에 걸쳐 사람의 아들에 관하여 말씀하셨고, 오늘 복음 마지막 단락에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지 못함을 꾸짖으십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제자들 이성 작용의 능력으로는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정확하게 분석해 보면, 제자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고 과거에 들어본 적이 없기에 무심히 듣고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현대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합니다. 또 그리스도교 신앙이 있는 신자들도 부활 사건에 대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임에도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분들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본질을 놓치고 그저 형식적인 것에만 치우는 경향도 많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고 본질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의심을 미리 알고 계셨기에 예수님은 직접 제자들에게 상처를 보여주시며 음식까지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드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의심을 버리고 스승과의 만남에서 기쁨이 넘쳐흐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던 그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였고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신 그 인사말과 함께 예수님 부활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된 제자들은 이제 무엇을 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부활 사건을 전해야 하는 막중하면서도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임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제자들처럼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때로는 무미건조(cut-and-dried life)을 느끼며 밋밋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쁨, 희망, 삶에 대한 애정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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