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사순시기의 절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이번 주간에 모두 이루어집니다. 이번 한 주간만이라도 거룩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지주일(Palm Sunday)이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가톨릭은 성주간(Holy Week)이라고 하고 개신교는 고난 주간이라고 합니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그리고 정교회 또한 모든 그리스도교가 같은 부활 날을 지냅니다.

 

부활절은 매년 바뀝니다. 모두 잘 아시는 것처럼 부활절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해졌습니다. 춘분 다음에 오는 만월(보름) 후 첫 주일입니다. 올해의 춘분은 320일이고 그 만월 즉 보름은 27일 토요일입니다. 그러면 28일 주일이 부활절이어야 하는데, 올해는 44일이 부활절입니다. 그 이유는 만월 즉 보름이 28일 새벽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44일이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부활절이 성탄절과 다르게 매년 다른 이유는 유대인들도 달력을 음력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과월절 혹은 유월절이 음력으로 인해 매년 달라지기 때문에 부활절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지주일입니다. 비록 오늘 수난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성지주일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는 복음서 네 군데 모두 다 나옵니다(마태 21, 1-11. 마르11, 1-11. 루가19,28-40. 요한12, 12-16). 모두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반기며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길에 깔기도 하고 자기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다고 복음서는 전 합니다. 네 복음서가 조금의 서술방식이 다르지만 큰 줄거리는 같습니다. 네 복음서에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이 사건이 가지는 비중을 우리가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본격적인 하느님 구원역사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정점을 이루십니다. 그 정점은 다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그 뒤에 나타날 엄청난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눈여겨 바라봅시다. 그 사람들 안에 우리 자신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교황, 주교, 사제, 우리 각각의 개인이 있습니다. 저 역시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며칠 후에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목청껏 외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혐의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 며칠 전 예수님을 환영하던 그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 주민들 안에 우리도 있습니다. 저 자신도 있습니다. 저도 지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정말로 어이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모든 분이 그렇지 않겠지만요. 십자가에 못 박혀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 밑에 누가 있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거기에 있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갔나요? 우리는 이 순간 어디에 있습니까? 아예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고개도 돌리지 않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계시는 여인들에게 주목합시다. 공관복음에서는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분명하게 나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보시면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19,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외에 십자가 곁에서 예수님을 지킨 사람은 어머니와 이름 없는 여인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모두 어디로 갔나요? 예수님을 환영하던 우리 자신은 어디에 갔나요? 가파르나움에서부터 따라온 여인들은 왜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지켰을까요? 그 여인들은 배우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유대 사회에서 정상적인 인간으로 대우도 받지 못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분명하게 확신하며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었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수난 복음 끝부분에 나오는 백인대장의 말처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는 확신을 그 여인들은 예수님과 동행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여인들이 부럽습니다.

성주간 거룩하게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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