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일 강론

  교우 여러분들께서는 누구로부터 진심어린 고백을 들어보신 적이 있겠지요? 아마도 지금 같이 부부의 연을 맺고 사시는 배우자에게 들어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강론 원고를 보시는 분들은 그 옛날 배우자께서 사랑고백하시던 때를 한번 떠 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떻했는지 떠 올려보세요.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서 그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분은 심장이 쿵쿵 거리는 분도 계실것 입니다. 누구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각자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우리 안에 엔톨핀을 마구 돌게합니다. 기분좋은 현상입니다. 

 또한 굳이 사랑고백이 아니라도 상대방으로부터 진심어린 고백을 듣는다는 것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좋은 관계를 맺는 출발점이 될수 있습니다. 소원하고 서먹서먹한 관계였다면 그 고백을 통해서 그동안 쌓였던 오래를 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앞으로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많이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더 나은 관계를 위해서 누구든지 상관없이 서로 마음을 고백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예수님 정체성에 대해서 진정한 고백을 듣습니다. 세간의 사람들이 당신을 두고 누구라고 하더냐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고 제자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의 예수님 정체성에 대해서 듣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 물음에 베드로 사도가 당당하게 나서서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의 고백을 듣고 그를 축복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의 주춧돌임로 명시하시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오늘날 교황제도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께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하고 그분의 은총을 청합니다. 아마도 그 고백은 우리 자신의 진정성이 담겨있는 우리 정체성의 모든 것 입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 고백처럼 자주 흔들리고 바뀔수 있듯이 때로는 우리의 고백이 하느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아닐까하고 느끼실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이 부끄럽고 한없이 한심한 존재임을 느끼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느님께 드리면서 끝까지 지킬것이라고 굳게 맹세까지 합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듯이 곧 잊어버리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내팽게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정말로 당당하게 예수님께 신앙고백했지만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고 로마군인들에게 매질 당하실 때, 베드로는 그분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 사도도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이 베드로 사도는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우리이지만 우리는 약한 그대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매일 우리 신앙을 고백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 맡기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하며 내 자신 중심으로 살고 필요할 때만 그분을 찾는다는 것까지도 하느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비록 얇지만 그분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사랑의 실을 놓지 마십시오. 신앙공동체에 실망하더라도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 나오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두려워마시고 걱정마시고 그분께 의탁합시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사건 이후에 오로지 그분께 의탁하고 그분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베드로 사도와 같은 신앙을 가질것이고 그분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칠것입니다.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 그분께 내 맡기고 충실히 살아가면서 우리의 덜 익고 나약한 고백을 그분께 드립시다.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는 축복된 한 주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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