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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November, 2025

대림 제1주일 - 신학적, 전례적 의미

                                       대림 제 1주일 – 신학적 · 전례적 의미 우리는 매년 예수 성탄을 기다리며 4주간의 대림시기를 보냅니다. 반복되고 계속되는 이런 대림시기에 과연 우리가 신앙인으로 어떤 삶의 모습으로 성탄을 준비 하고 있는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고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강론 때에는 대림시기가 가지는 신학적 의미와 전례적 의미에 대해 알아 보고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더 잘 맞이하기 위해 이 대림시기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 니다. 대림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지속적인 회개의 삶을 살아야하는 교회의 깊은 신학적 의미 를 보여주는 전례시기입니다. 대림시기는 신학적으로 세 가지 의미로 살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구원 신비의 종말론적 차원입니다. 대림시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에 영광 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리는 차원이 강조되는 시기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분이 다시 우리에게 오실 것을 믿고 그것이 창조의 완성임을 증언하는 것이 첫 번째 신학적 의미입니 다. 두 번째는 희망의 찬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구세주 오심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깨어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구세주께서 오시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구원의 소식은 신앙인에게 기 쁨으로 가득 찬 새로운 미래를 약속입니다. 그래서 비록 회개하며 뉘우치는 엄숙함 속에서도 이 만남을 깨어 기다리면 무엇보다 늘 기쁜 모습으로 희망에 찬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참회와 회개, 속죄의 시간입니다. 진정한 기다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 을 깨어 기다리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해야 합니다. 예수 탄생의 기쁨과 그리스도의 다...

No King (그리스도왕 대축일)

  No Kings 그리스도왕 대축일   지난 10 월 18 일 볼티모어 마라톤 대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번호에 무언가를 달고 뛰고 있었습니다 . 가까이에서 보니 'No Kings' 였고 , 그것은 그날 미국 전역에서 7 백만명 이상이 참여한 평화시위로 미국에는 왕이 필요없으며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운동이었습니다 . 세상에는 왕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포퓰리즘이나 독재를 통한 권력으로 , 막강한 자본과 기술로 , 혹은 특별한 재능이나 인기로 사람들 위에 서서 군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동시에 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빈정거리는 지도자들 , 조롱하는 군사들 , 그리고 모독하는 죄인입니다 . 왕이 되려는 자와 왕을 반대하는 자 모두 어떤 왕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 그들이 되려고 하는 왕과 그들이 반대하는 왕은 도대체 어떤 왕입니까 ? 노자는 도덕경에서 왕에는 네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 가장 수준이 낮은 왕은 사람들이 경멸하는 왕입니다 . 어떻게 왕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게 만듭니다 . 그보다 나은 왕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왕입니다 . 왕에게는 권력과 힘이 있기에 사람들을 그를 두려워합니다 . 그보다 나은 왕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칭송하는 왕입니다 . 말과 행동으로 모범이 되고 백성을 위해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왕이 있는데 그는 백성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왕입니다 . 왕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 세상이 그리스도왕을 모르는 이유는 세상의 왕들이 경멸받거나 두려워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 때론 사랑하고 칭송할만한 왕이 있긴 하지만 있는지도 모르는 왕은 없습니다 .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

우리 시대의 역설 (연중 33주일)

  우리 시대의 역설 연중 33 주일 -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밥 무어헤드 (Dr. Bob Moorehead) 는 ‘ 우리 시대의 역설 (The paradox of our age)’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건물은 더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고 ,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고 ,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내고 ,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 너무 드물게 기도하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 공기는 정화시키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다 … 세계 평화를 이야기 하지만 전쟁은 늘고 , 여가 시간은 늘어도 재미는 줄고 , 온갖 음식이 있어도 영양은 부족하다 수입은 두배가 되었지만 이혼은 늘었고 , 멋진 집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깨진 가정도 많게 되었다 …   ‘ 우리 시대의 역설 ’ 은 우리의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합니다 . “ 우리는 과연 우리의 부모 세대보다 더 행복한가 ?” 우리는 더 부유하고 더 편리하고 더 많이 가졌지만 동시에 더 이기적이고 더 게을러졌고 더 탐욕스러워졌습니다 . 우리는 결국 더 가난해졌습니다 . 이기심과 교만 , 탐욕에 갇혀 감사하지 않고 , 기뻐하지 못하고 , 나눌 것이 없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 제 아버지는 경북 풍기에서 농사와 과수원을 하는 집안에서 7 남매 가운데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시골에서 당신을 이어 농사를 짓기를 바랬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을 한 뒤 형을 낳고는 대구로 떠났습니다 . 그때 아버지 수중에는 5 만원이 전부였습니다 . 세 식구는 대구 신천동에 단칸방을 얻었습니다 . 곧...

자라나는 건물

  자라나는 건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무엇이나 누구를 사랑해본 적이 있습니까 ? 그건 위험한 일입니다 . 사랑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가면과 체면을 내려놓고 한없이 약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그가 하는 말 , 그가 웃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랑이란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갑옷을 벗고 심장이 훤히 보이는데도 발뒤꿈치를 세우는 일입니다 . 이런 열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입니다 .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덤덤하고 차갑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열정은 수난을 불러옵니다 .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를 엎어 버리신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사건입니다 . "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 삼킬 것입니다 "( 요한 2,17). 하느님 아버지 집에 대한 예수님의 열정 (Passion) 이 십자가의 수난 (The Passion) 을 가져왔습니다 .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 우리가 짓고자 하는 새성전을 향한 열정은 수난을 필연적으로 동반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 " 아 , 어리석은 자들아 !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 루카 24,25-26)   십자가없는 부활 , 고난없는 영광 , 죽음없는 생명이 없음을 안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으로 수난을 기꺼이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 그것은 행정적인 ...